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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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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1567년에 즉위하여 1608년까지 조선을 통치한 14대 임금입니다. 처음 묘호는 선종이였으나, 1616년 선조로 개정되었습니다. 선조는 덕흥대원군 이초와 하동부대부인 정씨 사이에서 출생한 셋째 아들로 명종의 이복 조카입니다. 당시 왕위를 이어받을 순회세자가 요절한 이후 명종의 총애를 받아 왕위계승 후보자로 낙점되게 됩니다. 1567년 명종이 서거하자 선조가 왕위를 이어받아 즉위하게 됩니다. 이로써 조선 최초의 서자 출신이자 방계혈통의 임금이 탄생하게 됩니다. 즉위 후 선조는 부친인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하였으나, 당시 사림파 선비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인순왕후에 의한 수렴청정이 이루어지지만, 선조는 스스로 사림 출신의 인재들을 등용심키고 이들의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지원하면서 인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끝나게 합니다. 즉위 초기에 조선전기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신원해주었고, 훈구세력에게는 죄를 물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또한 기묘사화 때 피해를 입었던 조광조를 증직하고, 가해자였던 남곤의 관작은 추탈하였고, 을사사화 때 윤임을 제거한 윤원형의 공적을 삭탈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사림파로 하여금 중앙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명분과 발판을 마련하여 새로운 인재들이 대거 정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세력이 중앙정계로 유입되자 그들간의 당파가 만들어지게 되고 당시 김효원과 심의겸 간의 충돌로 인해 동인과 서인이라는 당파가 만들어져 국가 운영에 많은 혼란과 잡음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후 1591년 세자 책봉 문제를 놓고 강건파와 온건파가 대립하게 되면서 남인과 북인이라는 세력대립이 만들어지며 정쟁은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1590년 일본 정탐을 위해 파견한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귀국 후 전혀 상반되는 보고를 하게 되자 선조는 고민하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이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밀고 들어오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길에 오르게 되고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이후 해상에서는 이순신 제독의 활약으로 일본 본토에서의 보급로가 차단되고, 육지에서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하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으로 인해 전세를 역전하여 결국 왜군이 퇴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상황에서도 당파의 대립은 지속되었습니다. 당시 선조는 곡식을 헌납받고 벼슬이나 신분상승, 사면 등의 대가를 주는 납속책을 강화하여 시행하는 등의 조치로 군량이나 군사를 보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조총을 도입하여 조총 사용법, 탄환제조법 등을 교육하여 군사력 강화에 힘쓰기도 하였습니다. 선조는 이러한 전쟁통에도 동인과 서인이 서로 충돌하는 것에 대해 개탄하였고, 특히 동인이 정철의 처벌을 놓고 내부적인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자, 동인을 배제하고 서인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게 됩니다. 1597년 일본은 명나라와의 강화회담이 무산되자 또다시 한반도를 침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신 제독의 활약으로 이를 막아내고 일본 본국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서거하자 일본군을 퇴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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