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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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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은 1545년부터 1567년까지 조선을 통치한 조선의 제 13대 임금으로 이름은 이환, 자는 대양 입니다. 중종은 장경왕후 윤씨와 인종을 낳았고, 문정왕후 윤씨와 명종을 낳아 명종은 중종 29년인 1534년 둘째 적자로 출생하였고, 인종의 동생입니다. 당시 두 왕후는 중종의 왕위 계승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처음 인종이 세자책봉될 때에는 이를 찬성하였으나, 이후 본인이 명종을 출산하자 장경왕후의 측근들은 문정왕후를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중종이 서거하고 인종이 왕위를 이어 받아 왕위계승 문제는 정리되고 장경왕후의 세력들이 권력을 회복하는 듯 했지만,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서거하고 명종이 어린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정세가 반전되게 됩니다. 문정왕후는 1545년부터 1553년까지 섭정을 통하여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문정왕후의 측근이였던 윤원형의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성종 때부터 시작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은 연산군시절 무오/갑자사화, 이어 중종대의 기묘사화로 번지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중앙관료층의 분열과 권력투쟁으로 발전해나가게 됩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경왕후 측의 세자를 왕위에 올리려는 외척 윤임 측 세력과 문정왕후 측의 세자를 왕위에 올리려는 윤원형 세력이 중종 말기부터 치열하게 대립하였습니다. 결국 인종이 즉위하며 이러한 다툼이 일단락 되는 듯 하였으나, 인종이 서거하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의 수렴정청으로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여 상대세력이였던 윤임 세력에 대한 숙청을 시작합니다. 윤원형은 윤임 세력이 중종의 여덟번째 아들인 봉성군을 왕위에 올리려는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이 같은 루머를 통해 윤임의 주요 측근들을 사사하거나 유배시키는 등의 숙청을 하였는데 이 사건이 바로 을사사화입니다. 이처럼 왕의 외척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폭정을 일삼자 조선백성들의 민심은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양주의 백정출신 의적 임꺽정이 세력을 키워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탐관오리들을 벌하고, 관의 재산을 빼앗는 등의 사건이 빈발하였고, 1555년 왜구가 전라도에 상륙하여 영암/장흥/진도 등을 약탈하는 을묘왜변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을묘왜변으로 인해 임시로 존재하였던 군사기관인 비변사가 상설기관으로 승격되어 운영되였습니다. 이때 설치된 비변사는 이후 임진왜란을 통해 정치/경제/군사/외교 등 국가운영 전반에 대해 처리하는 국가 최고기관으로 승격되어 운영됩니다. 1553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자 명종은 왕권 안정을 위해 측근들을 이조판서, 이조전랑으로 등용시키지만, 이에 대한 반발과 역효과만 나타나게 됩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서거할 때까지 명종은 자신만의 정치 지지세력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여러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정치를 안정시키려 하지만 실패사게 됩니다. 결국 1567년 병세가 악화되어 34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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