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체제가 갖추어지고 후백제의 견훤이 가장 먼저 영토확장을 시도하였지만 대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서 세력확장에 실패하고, 거기에 나주지역마저 궁예의 후고구려에게 뺏기게 되어 궁예에게 밀리는 형국이 됩니다. 한편 세력확장에 성공한 궁예는 898년 송악으로 천도한 후 지역 호족들을 관리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양길 세력이 지배하였던 영토를 복속시키게 됩니다. 이에 궁예는 갑자기 늘어난 영토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체제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였지만 901년 국호만 고려로 바꿔 옛 고구려계 호족을 흡수하는데 그쳤습니다. 이후 901~903년 견훤 세력을 앞서게 된 궁예는 비로소 국가 체제를 개편할 여유를 가지게 되고 다시 최초 본거지였던 철원으로의 천도를 계획하게 됩니다. "삼국사기" 본기에는 "궁예는 철원과 현재 평강인 부양을 방문하여 산수를 둘러보고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검토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904년 궁예는 마침내 국호를 마진으로 정하고 연호를 무태 원년이라 칭하였습니다. 마진은 인도어 마하진단의 약어로 마하는 크다라는 뜻이고, 진단은 진나라 사람이 사는 곳 즉, 동방지역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진이라는 국호는 대동방국을 의미하는 약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궁예는 신라 조정의 구조를 벤치마킹하여 관서와 관등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에 후고구려의 관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중앙최고기관으로 광평성을 설치하고 시중으로 광치나, 시랑으로 서사, 원외랑으로 외서를 두었습니다. 이어 병부와 세금과 공물, 곡식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대룡부를 설치하였고, 의례에 관해서는 수춘부, 국빈 대접에 대해서는 봉빈부, 형법과 형벌 등을 다스리는 의형대, 재물과 창고에 관한 일을 다스리는 납화부를 두었고, 재정에 관한 일을 다스리는 조위부와 도성과 내무를 관정하는 내봉성, 제사와 유교경전을 관리하는 금서성, 토목공사에 대한 일을 관장하는 남상단, 말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비룡성 등을 설치하여 중앙저웁의 기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또한 정광, 원보, 대상, 원윤, 좌윤, 정조, 보윤, 군윤, 중윤 등의 9품직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국가체제를 재편하고 기초를 다진 궁예는 철원으로의 천도에 앞서 완벽한 패서지역 장악을 위해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던 저항세력인 유긍순 세력을 토벌하게 됩니다. 유긍순은 현재 황해도 연안인 염주지역의 호족으로 897년 궁예의 공격으로 패서지역의 호족들이 모두 투항할 때 혼자 버텼던 호족입니다. 궁예는 마지막 남은 호족인 유긍순 세력을 공격하여 완전히 몰아내고 패서지역을 완벽히 장악하게 됩니다. 이때 유긍순의 기실 태평은 군졸이 되고 이후 고려조정에서 일하게 됩니다. 904년 마지막 남은 패서지역의 저항세력을 토벌한 궁예는 철원천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우선 철원을 마진의 도읍이라 선포하였는데, 당시 철원도성의 규모는 외성이 12.7km, 내성은 7.7km 에 이르는 상당한 규모의 성이였습니다. 이어 청주에 거주하던 1천여 가구를 철원으로 이주시키게 됩니다. 905년 궁예는 철원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고 궁궐과 누대를 수리하고 연호도 무태를 성책으로 바꾸어 원년으로 삼았습니다. 한편 905년 신라에는 특이한 기상현상이 나타나는데 2월에는 유성우가 발생했고, 4월에 서리가 내리는 등의 불길한 징조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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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철원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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